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국교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중세 카톨릭에서 종교개혁, 르네상스에서 오늘의 이탈리아 수도가 되기까지< 로마의 역사의 대강 >에 대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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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의 초기
로마의 기원은 기원전 7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화에 의하면 왕녀 레아 실비아는 여사제였다.
여사제의 권위는 대단했으나 순결을 잃거나 신전의 불을 꺼트리면 생매장을 당했다.
어느 날 실비아는 강가에서 더위를 식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전쟁의 신 마르스가 낮잠을 자고 있는 실비아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그녀를 범했다. 그 후 아들 쌍둥이를 낳은 실비아는 형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를 바구니에 담아 테레베 강에 떠내려 보냈다. 바구니는 팔라티노 언덕가의 무화과 나뭇가지에 걸려 멈추었다. 지나가던 늑대가 바구니 속의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젖을 먹였다.
이것을 본 목동이 쌍둥이를 데려다 키웠다. 그 후 늑대는 로마의 상징이 되었다. 성스러운 새(독수리)를 많이 본 형의 뜻에 따라 현제는 팔라티노 언덕에 나라를 세웠다. 형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는 이름이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 후 동생 레무스가 형의 뜻을 따르지 않자 로물루스는 동생을 죽였다.
이때부터 로마의 역사는 피의 역사와 함께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2. 공화정 시대
기원 전 5세기 에트투리아 군주인 타르퀴니우스에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켜 공화정을 세웠다.
로마는 BC 2세기 중엽까지 막강한 군사력으로 지중해 서안을 지배했다.
이 시기에는 마리우스, 술라, 폼페이,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기원 전 500년에 �겨난 마지막 에트투리아 왕에서부터 아우구스 황제 통치 때까지 로마는 거의 5세기동안 공화주의 체제를 지속했다. 그러나 로마의 민주주의는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어서 BC 27년 황제가 전권을 쥐게 되자 로마의 민주주의도 막을 내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대담하고 천재적인 지휘관으로 승전을 거듭한 끝에 지중해 전체의 패권을 장악했다. 기원 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독재관이 된지 1개월 만에 암살당했다. 그러나 로마 제정의 등장이라는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3. 로마 제국 시대
카이사르의 조카이자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는 신에게 바친 장소나 사물에 붙여지는 아우구스투스로 불렸다. ‘조국의 아버지’인 그는 ‘로마제국의 최고의 전성시대, 팍스 로마나’를 구가했다.
이때부터 4세기동안 로마의 왕조는 놀라운 정복과 쇠퇴기를 겪게 되었다. 수 세기동안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황제들은 사치스런 건축물을 세웠다.
이 제국은 사하라에서 라인 강과 다뉴브 강까지 확장되었으며 대서양에서 파르티아 왕국과 접하게 되는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렀다.
235년부터 285년까지 50년 동안 계속된 피비린내나는 군인황제 난립시대는 로마 제국을 해체위기로 몰고 갔다.
4. 제국의 분열
4세기, 혼란한 시기를 평정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광대한 로마 제국의 영토를 네 명의 황제가 분할하여 통치하도록 했다. 콘스탄티누스대제는 로마 제국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겼다.
그 후 북방의 외적들이 수시로 침입하여 로마를 철저히 파괴했다.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과 억제할 수 없는 집단 이주가 다시 시작 되어 동로마제국은 무너졌다.
콘스탄티노플은 서로마제국의 수도로 머물다 410년 서고트족에 의해 침공과 약탈을 당하고 476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마지막 황제로 멸망했다.
5. 기독교 시대
티베리우스 통치 시대인 1세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로마 사회의 각계각층으로 퍼져 나갔다. 계속되는 박해에도 기독교는 번성해 나갔다.
313년 콘스탄티누스황제는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칙령을 내리고 성 베드로의 무덤 자리에 성당을 짓도록 했다. 이리하여 로마는 기독교 중심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중세에는 많은 교황이 신성로마제국황제와 권력 다툼에 휘말렸다.
그런 가운데 교황들은 세속의 왕처럼 사치스런 생활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반종교개혁 말기까지 이어졌다.
6. 중세의 로마
4세기 제국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가자 중세 초기로 들어서면서 로마의 인구는 수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막강했던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되었다.
한 때는 교황권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로마가 권력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지만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사이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인하여 로마의 힘도 약해졌다.
10세기부터 12세기까지 로마는 역사상 가장 비참한 시기에 속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북부의 많은 도시들은 그들의 독립을 주장했다. 그 중 가장 막강한 도시 베네치아는 서해안의 제노비와 피사와 세력을 겨루었다.
7. 르네상스 시대
15세기 이탈리아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래 유럽 최고의 예술과 학문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447년에 왕위에 오른 교황 니콜라스 5세는 로마를 교황권의 중심 도시로 만들기를 결심했다. 그 후 교황 줄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는 로마를 변모시켰다.
고전 문화의 부흥을 외친 르네상스에서 영감을 얻은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라파엘, 첼리니 등과 같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새롭게 탄생한 로마의 교회와 궁전을 건축했다.
이러한 문화적인 재탄생을 맞게 된 것은 북부 도시국가들을 다스렸던 부유한 가문들의 후원 덕분이었다.
8. 바로크 시대
16세기 무렵 화려하고 웅장한 교황청은 종교개혁자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로마의 부유층은 낭비와 사치, 향락을 일삼았다. 또한 캬돌릭이 신교보다 훌륭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수많은 교회, 기념비, 분수 등이 화려하고 인상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세웠다. 바로크 양식 건축의 거장으로 베르니니와 보르미니가 있었다.
9. 통일 로마
이탈리아는 나폴레옹 통치하에서 통일을 이루는 듯했으나 다시 여러 개의 작은 주로 갈라지고 교황 통치권이 로마에 반환되었다. 그 후 가리발디장군과 여러 애국자들이 오스트리아 부르봉가, 교황에 대항하여 50년간 통일 자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859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를 중심으로 그 힘은 더욱 발전했다. 1870년 이탈리아 왕국이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점령함으로써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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