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정치판에서 힘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대통령선거 때다. 김영삼(YS) 후보는 전북 전주의 기독교 인사들을 만나 혼났다. “교회 장로가 왜 안식일에도 유세하느냐. 호남 기독교 200만 표를 물로 보느냐.” YS는 두 차례 일요일 유세를 접었다. “청와대에 찬송가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섣부른 약속에 역풍(逆風)도 맞았다. 노태우 후보는 정반대였다. 영남의 여성 불교도 사이에 “노 후보가 이기면 지폐에 세종대왕 대신 다보탑을 넣는다더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노 후보는 해명도 않은 채 침묵했다. 결국 몰표를 받아 승리했다.
92년 대선 때 YS는 몸조심을 했다. “연설 말미에 ‘하나님께 감사를 올린다’는 구절을 빼지 말라”는 기독교계 주문을 거절했다.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충현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따로 가족끼리만 예배를 올렸다. 청와대의 불교신자 모임인 ‘청불회’도 허용했다. 하지만 바람은 나뭇가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YS 청와대 시절의 고위 관계자가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당시 초대형 교회 건물 하나가 말썽이었다. 부탁을 들어주기 애매했다. 하루는 그 교회의 유명한 A목사가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며 청와대를 찾아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한 번 시작된 A목사의 기도는 끝날 줄 몰랐다. 30분이 흐르고, 1시간이 지나고…. YS는 꾹 참았다. 중간에 끊었다간 후폭풍이 겁났다. 도리 없이 비서진이 나섰다. A목사에게 “건축 민원은 최대한 소화하겠다. 다음 공식 일정이 잔뜩 밀려 있다”고 귓속말을 했다. 기나긴 기도가 끝이 났다.
불교계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비원(<7955>苑) 연못의 연꽃이 시들해지자 웅성거렸다. 물고기들이 뿌리를 갉아먹은 것이다. 초조해진 청와대는 물고기를 한쪽으로 몰고 연못을 가로질러 그물을 쳤다. 반쪽에서나마 탐스러운 연꽃이 가득하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청와대 ‘불상(佛像) 사건’도 유명하다. 당시 육·해·공에서 대형 참사들이 터지자 “청와대 뒷산의 불상을 훼손한 탓”이란 괴소문이 나돌았다. 청와대가 아무리 해명해도 믿지 않았다. 결국 승려와 기자들을 직접 현장에 데리고 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 꿇고 기도한 여진(餘震)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 인사들은 답답한 모양이다. 지난 2년간 대통령은 내부적으로 무척 조심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곤 소망교회에 가지도 않았다. “하나님보다 대통령 보러 가느냐”는 오해나, 경호실의 깐깐한 사전 검색을 불편해하는 교회신도들도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요즘엔 “특정 종교 지도자들만 자주 만나는 건 좋지 않다”는 참모진의 건의도 잘 지켜온 편이라 한다. 주로 케이블TV로 예배를 본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통성(通聲)기도 사진이 공개됐다.
현장에서 이 대통령은 머뭇거렸다. 맨 마지막에 무릎을 꿇었다. 사실 대통령을 탓하긴 어렵다. 혼자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있어도 영 어색할 뻔했다. 기도를 이끈 길자연 목사는 “대통령의 권위를 훼손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국민에게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쯤에서 매듭지어야 할 사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계속 흘러나오는 일부 기독교 단체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린다. “오히려 이런 대통령의 모습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느냐”는 대목은 듣기 거북하다.
마태복음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면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장6절)”고 했다. 과연 조찬기도회장인 코엑스가 회당인지 골방인지 판단하는 것은 필자의 몫이 아니다. 다만 종교 간 반목으로 사소한 잔가지들이 나라의 줄기까지 뒤흔드는 게 안타깝다. 정교분리가 희미해져 상호간섭이 도를 넘는 것도 걱정스럽다. 누가 대통령이든 종교활동 전면에 동원되는 풍경은 사라졌으면 싶다. 언제까지 비원 연못에 그물을 치는 쌍팔년도 코미디를 반복할 수 없지 않은가.
이철호 논설위원
92년 대선 때 YS는 몸조심을 했다. “연설 말미에 ‘하나님께 감사를 올린다’는 구절을 빼지 말라”는 기독교계 주문을 거절했다.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충현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따로 가족끼리만 예배를 올렸다. 청와대의 불교신자 모임인 ‘청불회’도 허용했다. 하지만 바람은 나뭇가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YS 청와대 시절의 고위 관계자가 들려준 이야기 한 토막.
“당시 초대형 교회 건물 하나가 말썽이었다. 부탁을 들어주기 애매했다. 하루는 그 교회의 유명한 A목사가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며 청와대를 찾아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한 번 시작된 A목사의 기도는 끝날 줄 몰랐다. 30분이 흐르고, 1시간이 지나고…. YS는 꾹 참았다. 중간에 끊었다간 후폭풍이 겁났다. 도리 없이 비서진이 나섰다. A목사에게 “건축 민원은 최대한 소화하겠다. 다음 공식 일정이 잔뜩 밀려 있다”고 귓속말을 했다. 기나긴 기도가 끝이 났다.
불교계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 날 비원(<7955>苑) 연못의 연꽃이 시들해지자 웅성거렸다. 물고기들이 뿌리를 갉아먹은 것이다. 초조해진 청와대는 물고기를 한쪽으로 몰고 연못을 가로질러 그물을 쳤다. 반쪽에서나마 탐스러운 연꽃이 가득하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청와대 ‘불상(佛像) 사건’도 유명하다. 당시 육·해·공에서 대형 참사들이 터지자 “청와대 뒷산의 불상을 훼손한 탓”이란 괴소문이 나돌았다. 청와대가 아무리 해명해도 믿지 않았다. 결국 승려와 기자들을 직접 현장에 데리고 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릎 꿇고 기도한 여진(餘震)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청와대 인사들은 답답한 모양이다. 지난 2년간 대통령은 내부적으로 무척 조심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제외하곤 소망교회에 가지도 않았다. “하나님보다 대통령 보러 가느냐”는 오해나, 경호실의 깐깐한 사전 검색을 불편해하는 교회신도들도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요즘엔 “특정 종교 지도자들만 자주 만나는 건 좋지 않다”는 참모진의 건의도 잘 지켜온 편이라 한다. 주로 케이블TV로 예배를 본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통성(通聲)기도 사진이 공개됐다.
마태복음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면서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장6절)”고 했다. 과연 조찬기도회장인 코엑스가 회당인지 골방인지 판단하는 것은 필자의 몫이 아니다. 다만 종교 간 반목으로 사소한 잔가지들이 나라의 줄기까지 뒤흔드는 게 안타깝다. 정교분리가 희미해져 상호간섭이 도를 넘는 것도 걱정스럽다. 누가 대통령이든 종교활동 전면에 동원되는 풍경은 사라졌으면 싶다. 언제까지 비원 연못에 그물을 치는 쌍팔년도 코미디를 반복할 수 없지 않은가.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