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전설이 떠난다. 청암 박태준. 이 나라 철강산업을 일군 세계적 철강인. 지난 13일 오후,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인은 그가 써온 철강신화의 마지막 장을 접고 전설이 되어 떠난다. 내일이면 영영 우리 곁을 떠나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어간다. 그와의 이별이 못내 아쉽고 슬프기만 하다. 이로써 우리는 이나라 산업화 1세대를 이끈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등 3인의 위대한 경제인을 모두 잃었다.
박태준. 그는 떠나지만 많은 것을 남겼다. 그는 포항제철을 건설하며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그의 말대로 포항제철의 역사는 선진국에 대한 일대 추격이었고, 인간 스스로의 능력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5000년 동안 쌓아온 우리 민족의 체념과 패배의식에 일대 분발의 기름을 붓는 국민정신의 시험장이었다. 그는 이 시험장에서 이기기 위해 영일만의 허허벌판에 2층 목조건물을 지어 숙식을 해결하며 제철소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그가 얼마나 일에 매달리며 완벽하게 현장을 지휘했는지 당시 제철소 현장 주변에서는 그가 기거하는 작은 판잣집을 ‘롬멜하우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는 이 시험장을 거뜬하게 통과하며 오늘날의 포스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종교는 철강이라고 했다. “철이 성공하면 나라가 살고, 실패하면 나라도 망해 나는 철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에 대한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는 철강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는 기업이념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했다. 거기에 책임정신과 완벽주의가 더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경영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하는 동시에 인간존중과 기술개발의 경영이념을 실천했다.
박태준, 그는 매사에 정열을 쏟아부으며 치열하게 일을 추진했다. 1970년 제철소 건설을 시작할 때 현장 직원들에게 한 말은 아직도 ‘우향우’ 어록으로 회자되고 있다. “고귀한 선조의 피 값으로 시작한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몇 사람의 사표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 우향우하여 동해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이런 그의 정열과 치열함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고, 민족의 가난의 역사를 끊었다. 그의 말 속에는 직원들에 대한 깊은 신뢰와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남을 탓하기 보다는 철저한 책임감으로 일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 9월 포항에서 포스코 퇴직근로자들을 만나서는 “우리는 후세에 행복을 주기 위해 희생하는 세대였다. 오늘날 눈부시게 성장한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피땀 흘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춘을 바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와 조국의 현대사 속에 묻어 있음을 잊지말자”고 했다. 그렇다. 박태준 그처럼 희생하는 세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호사를 누리기 힘들 것이다.
군인, 기업인, 정치인으로 살아온 박태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물러날 때 물러나며 진퇴를 분명히 했던 사람이다. 크고 작은 일에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쇳덩이처럼 단단하게 살아온 철인 박태준, 그가 영원히 잠든다. 집 한 채는 커녕 포스코 주식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청렴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이런 선지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다. 이들을 우리에게 보내준 신에게 감사한다.
박태준, 그가 지핀 용광로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오래도록 그를 기억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출처 : CNEWS 데스크 칼럼 2011-12-15
***********************************************************************************************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1927∼2011). 그는 군인이자 기업가, 또 정치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에 대한 긴 안목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진 사람이었다. 박 회장을 추억하는 두 가지 사례를 통해 그의 인간됨과 삶의 깊이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3년 이맘때쯤 일본 도쿄의 작은 선술집. 그곳은 아주 비싸지도, 그렇다고 허름하지도 않은 여느 일본 음식점이었다. 주인장은 예순 중반의 노인과 타국에서 고생하는 유학생들을 최고급 회로 극진히 대접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망명했지만 노인은 유학생들을 말벗 삼아 조국의 정치판과 지난날 격동의 시기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곱씹었다.
15일 전남대 전자컴퓨터공학부 이칠우 교수(53)는 교육자로서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한 몇 가지 기억을 소개했다.
지난 13일 타계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군인이자 기업가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교육에 대한 헌신과 선견지명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교수는 고인이 1985년부터 추진한 제철장학회(현 포스코 청암재단의 전신)의 해외유학생(이하 포철장학생) 4기생이다. 이 장학생 모임은 현재 포스코 월드 아카데미 클럽(PWAC)으로 불린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5개국에 각 한명씩 유학생을 보내는 사업이었다.
"1986년 어느 토요일 오후였어요. 필기를 통과해 면접에 들어갔는데 박태준 회장께서 직접 면접관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항간에 마음에 들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면접을 보고, 마음에 안들면 5분 만에 내보낸다고 했는데, 저보곤 5분 만에 나가라고 하시더군요." 당시 이 교수는 허탈한 마음에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총 5명의 합격자 중 한 명으로 통보를 받고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됐다. "자네는 처음부터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안봐도 될 것 같아서 나가라고 했지." 박 명예회장의 호탕한 설명이었다. 이 교수는 이후 일본 도쿄대에서 유학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포철장학생은 유학비 지원액으로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일본의 문부성 장학생 지원비(당시 대기업 입사 초봉 수준)와 비슷했으며 논문제출, 해외학회 참여 등의 경비를 추가적으로 지원해줬다. "큰 자부심를 갖고 공부했죠. 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전자공학, 생물학, 화학, 정치외교 등 각분야에서 장학생들이 공부했습니다."
그 무렵 박태준 회장은 포스텍(포항공대) 설립에 착수한다. 그는 이날 신라호텔 만찬에서 "학생들이 공부만 잘할 수 있다면 포항공대 벽에 금칠해 달라고 하면 금이라도 바르겠다"고 말했다. '기업엔 한계가 있어도 교육엔 한계가 없다'는 그의 지론을 드러낸 대목이다.
총 71명이 포철장학생으로 배출돼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선진 기술과 학문을 익혔다. 이들 중 20여명은 해외에 체류 중이며 51명이 국내에서 대학교수, 기업체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포철장학생 제도는 1994년 11기를 끝으로 중단됐다. 1994년 김영상 정부 시절 포철에서 '박태준 색채 제거하기' 일환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일본 망명 시절, 일본 도쿄의 작은 아파트에서 기거했다. 당시 그의 소중한 말벗은 자신이 직접 뽑은 일본 유학 포철장학생들. 말술이기로 유명한 박 명예회장은 이들을 집으로 불러 한 명, 한 명 술잔을 기울이며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일일이 챙겼다. 그러면서 "포철에서 너희들 장학금, 그 돈을 어떻게 버는지 알지 않느냐. 헛되게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그토록 좋아했다는 포철장학생들과 마지막으로 조우했던 건 지난 3월이었다. 머리가 희끗해진 이들은 이제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교수, 기업체 임원이 됐다. 이들에게 박태준 명예회장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중요한건 '윤리'다. 세계 각국에선 기업 간의 상도덕, 국가사회의 윤리 중요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한국은 그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게 이들에게 준 마지막 메시지가 됐다. 이 교수 등 포철장학생 14명은 15일 오전 10시30분께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박태준을 기리며 단체로 조문, 눈시울을 붉혔다.
'세상 속으로 > 세상의 뉴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면세점 쇼핑의 모든 것(아시아경제) (0) | 2012.08.01 |
|---|---|
| 원선오 신부 "나는 한것이 없다"(5.22 매일경제신문 기사 (0) | 2012.05.23 |
| 멋있는 삶(안철수 1500억원 사회에 환원) (0) | 2011.11.14 |
| 국가별 아이큐 순위(한국2위) (0) | 2011.10.02 |
| 하용조 목사님은 천국서 일 시작했을 겁니다” (0) | 2011.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