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람은 바라본 대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끊었는데 TV광고를 보다가 시원한 맥주 광고를 보고 딱 한잔만 하고 생각하고 한잔을 먹다가 다시 주정뱅이가 된 일이 있습니다.
나도 역시 몸이 뚱뚱하여 Diet를 하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집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든 것을 바라보면 내일부터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맛있게 많이 먹게 됩니다.
어느 사람은 옛날 자기가 날씬하던 때의 사진을 크게 현상하여 붙여 두고 다시 저렇게 되겠다고 날마다 바라보고 음식을 조절하였더니 살이 많이 빠졌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가 어려서 바라보는 것 때문에 세 번 이사를 간 孟母三遷(맹모삼천)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맹자가 공동묘지 곁에 살았더니 맹자가 노는 것이 사람이 장례를 지내며 엉엉 우는 것만 흉내 내어 안 되겠다고 하여 시장이 있는 곳에 이사를 갔더니 싸구려, 싸구려 하면서 장사꾼 흉내만 내어 안 되겠다고 하여 다시 학교 옆으로 이사를 갔더니 책만 읽는 흉내를 내어 됐다 하고 거기서 살았다는 맹모삼천의 이야기가 있듯이 우리가 바라본 대로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들딸을 시집 장가보내기 전에 상대방의 부모를 먼저 보는 것은 가풍이란 것이 자기도 모르게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미국도 상류 사회에는 이보다 더 엄격히 가풍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의 하류층만 보고 미국을 판단하는 잘못을 늘 저지르고 있는데 미국의 상류를 파고들면 큰 벽이 있고, 그 벽을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고, 이 벽을 넘겨 볼 때에 우리보다 더 무서운 규율이 있습니다.
우리가 요사이 아이들을 때리면 큰 난리가 나는데 미국 상류 가정에서는 어린 아이를 지하실로 데리가 내려가서 가죽 허리띠로 때리고 여자, 아이는 궁둥이를 때리는 일이 엄한 가정에서는 있고 또 Time Out 이라는 벌이 일반 가정에서 흔한 체벌로 있고 학교에서도 흔히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는 규율이 육군 사관학교보다 더 엄합니다. 미국을 말 할 때에 하류층을 보고 말하지 말고 미국을 움직이는 1%를 보고 말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바라보는 일을 잘 하여야 나도 그 영향권 내에 들어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함이 임하는 것입니다.
가. 잘못된 것을 바라 본 결과
1. 하와의 경우 -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생명나무의 실과를 안 바라보고 선악과의 실과를 뱀의 말을 듣고 바라본 결과 그 실과를 따먹게 되고 그 결과로 자기는 물론 그 후예까지 에게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슬린 죄를 넘겨주어 인류에게 사망과 저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명령이 있으면 처음부터 아예 바라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요새에 음란한 잡지나 책이나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쉽게 바라볼 수 있는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란 한 것을 바라보면 마음에 음욕이 생기고 그 결과로 마음으로 간음을 하게 되고 간음을 한 결과는 죄를 짓는 결과가 옵니다.
마귀가 바라보게 하는 것을 바라보면 잘못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2. 롯의 아내의 경우
창세기19장 29절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하나님이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죽어 버렸습니다.
롯의 아내는 바로 전날 밤에 천사를 대접하고 천사의 손을 잡고 소돔성을 이끌려 나온 아브라함의 조카며느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바라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절대로 뒤를 바라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과거를 바라보지 말고 미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소망으로 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다윗 왕의 경우
사무엘하 11장 2절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지라”
다윗은 잘못된 남의 여인의 목욕을 하는 것을 바라본 결과로 죄를 짓게 되고 더 나아가서 부하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가지는 결과를 범하고 그 죗값으로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형제간에 서로 살상하는 칼이 집안에서 떠나지 않는 죗값을 무섭게 열 배나 더 받게 되었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본 결과 이러한 엄청난 결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만 안 바라보았다면 정말로 1등이 되는 훌륭한 왕이 되었을 것인데 큰 잘못을 저지른 왕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나 도덕이나 양심이나 세상 법에 어긋나는 것은 바라보지 말고 살아가야 죄를 멀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이 바라보이거든 눈을 감아서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9절 - 30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나. 잘된 것을 바라본 결과
1. 아브라함의 경우
창세기 13장 14 -16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바라보라한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하늘의 별을 바라 보라 할 때에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는 것을 바라보고 그 바라본 대로 이루어 주실 꿈을 가지고 이름까지도 바꾸면서 바라 본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과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더 나아가 영적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어 수억 명의 신앙인의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보라는 것을 바라보고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꿈을 갖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요셉의 경우
창세기 37장 5 - 9절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요셉은 어려서 꿈을 꾸었습니다.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하여 꿈을 말하며 꿈을 이룰 때까지 참으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요셉은 이 꿈으로 인하여 많은 고생과 억울함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갈 때에 결국 그 꿈이 이루어진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시고 이루어 주실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그 꿈이 이루어 질 때까지 고초와 실망과 어려움이 와도 이겨 나가야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욥기 8장 7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우리가 지금은 미약하지만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반듯이 받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군이 이루어지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이 꿈을 이룰 사람이 되기 위하여 소소한 정욕을, 보디발의 유혹을 옷을 벗어 던지면서까지 마귀의 꿈을 깨려는 궤계를 이긴 것입니다.
3. 모세의 경우
히브리서 11장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애급 왕실에서 받는 호사스러움보다 광야에서 고난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사는 것이 더 크고 귀한 아름다움으로 여기고 이를 바라보고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고난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재물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욥의 경우
야고보서 5장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하나님께서 마귀 앞에서 욥을 칭찬할 때에 마귀가 참소하여 많은 시험을 당하였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승리를 한 후에 하나님이 그에게 갑절의 복을 더 주시는 결말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주시는 결말은 보고 시험을 참고 꿈을 이기면서 좋으신 하나님이 주시는 결말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이 환난과 역경과 어려움이 나의 결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의 과정이지 이 과정이 지나면 하나님이 반드시 나에게 아름다운 결말을 주시는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것을 바라보는 자가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인간적인 육신적인 면으로는 바라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외모도 그저 그렇고 가난한 사람이었고 허약한 마른 순 같고 간고와 질병을 많이 경험한 연약한 육체의 사람입니다.
이사야 53장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예수님의 외적으로 나타난 것을 바라보지 말고 그 내면에 있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 용서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의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저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면서 용서의 기도를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2. 대신 희생하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볼 때 희생의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십니다. 내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내 대신 죄를 지시고 희생양이 되어 죽으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십자가의 희생의 예수를 바라보면 내게 임한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마귀가 가져다 준 모든 저주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소망과 희망으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이요 나의 소망이신 주님을 우리는 바라보면서 희생의 주님을 바라보고 본받으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최후 승리를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승리는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죽으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승리의 보고를 하시었습니다. 나도 역시 죽고 살아야 승리가 임하고 최후의 육신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에 영원한 천국의 승리의 삶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오른 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도 내어 주는 죽어지내는 사람이 되고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벗어 주는 사람이 되는 죽어지내는 삶을 살다가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완전하게 내가 죽어지내며 받은 고통이 상급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 욕심이 죽고 고집이 죽고 교만이 죽고 죄악이 죽은 자가 육신이 죽을 때에 완전한 승리자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
사람은 무엇을 바라 보았냐애 따라서 결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양심에 어긋나고 도덕에 어긋나고 세상 법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마귀의 궤계에 빠져서 결국은 마귀에게 승리를 줍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를 바라보고 용서와 희생과 최후 승리를 바라보고 살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바라본 대로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살아갑시다. 용서의 주님을 바라보고 나도 용서하면서 살아가십시다.
주님을 바라보면 질병에서 해방이 되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죄악에서 해방되고 안 되는 일에서 해방이 되어 최후의 승리를 얻는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바라보라 하신 것을 바라보고 살다가 바라본 대로 이루어짐을 받는 승리를 얻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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