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그리스도의 편지

無宗敎 47%, 종교의 블루오션 한국

꿈꾸는 파사오리 2007. 2. 20. 16:56
無宗敎 47%, 종교의 블루오션 한국

종교인들 사이에서 한국은 두 가지 종교적 특수성을 띠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하나는 세계 200여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비신앙인이 많다는 점이다.

2005년 통계청 센서스 결과를 보면 전체 인구 4,800만 명 가운데 절반을 좀 넘는 53%가 종교 혹은 신앙을 갖고 있고, 47%는 그렇지 않다. 가톨릭이 지배하는 유럽과 남미, 개신교가 지배하는 미국, 이슬람이 지배하는 중동, 가톨릭과 이슬람이 혼재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주요 종교, 그 나라 국민의 절대다수가 신앙하는 종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지배적 종교가 없다.

다른 하나는, 그런 가운데 역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세계 거대종교로 일컬어지는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가 공존(共存)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평화 속의 공존, 곧 정치적 압박이나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화롭게 정립(鼎立)하면서 (선의의) 교세 확장 경쟁을 벌인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서 그렇지, 세계에서 이 같은 종교적 무풍지대 혹은 거꾸로 종교의 개척 여지가 많은 블루오션도 드물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의 특정 종교의 부침(浮沈)은 곧 그 종교와 현대인의 관계를 가늠해 볼 중요한 척도가 된다. 오늘, 메마른 현실에 지치고 각박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이 그 마음의 안식처, 영혼의 쉼터로 삼고 싶어 하는 종교는 과연 어떤 것인가? 그 질문의 해답과 직결되는 것이다. 그 답은 무엇인가?

아무도 생각 못한 가톨릭의 약진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서 더욱 조용히 가톨릭의 지평이 확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른 땅으로 빗물이 스며들 듯 그 신자는 줄곧 늘어났고 교세는 다른 종교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확장됐다.

그것은 그동안 많은 사람이 다른 종교보다 좀더 가톨릭을 받아들였거나 혹은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현실을 드러나게 했다. 2006년 5월 정부(통계청)가 발표한 주택-인구총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가톨릭 신자는 10년 전에 비해 74.4% 증가한 514만6,000명으로 응답됐고, 불교 신자는 3.9% 늘어난 1,072만6,000명이었다. 반면 개신교는 10년 전보다 오히려 1.6% 줄어든 861만6,000명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통계 결과는 개신교 측이나 가톨릭 측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의외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 20년간의 신자 증가율에서도 의미 있는 수치들이 도출됐다. 가톨릭 신자는 20년 전보다 175.9%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불교는 33.1%, 개신교는 32.3%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000만 성도를 넘어섰다’는 얘기가 나오던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의 선교 방식은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그 행태도 비교가 안 될 만큼 덜 적극적인 것으로 인식돼 왔다. 그럼에도 오히려 가톨릭 신자가 20년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 그 증가율에서 다른 종교를 앞지르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통계청, 2005년 종교지도).

이 같은 통계 발표는 우리 종교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특히 가톨릭은 가톨릭대로,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왜 개신교 신자는 줄었는데 가톨릭은 늘어났는가’라는 제목을 놓고 분석과 연구, 반성과 대책에 부심했다. 그런 과정에 가톨릭 쪽에서는 신자의 증가라는 양적 측면을 뛰어넘는 또 다른 두 가지 특성이 새로 발견됐다. 먼저 하나는 공식 등록신자든 아니든, 일반인이 가톨릭에 대해 호감(이미지)을 갖고 있다는 추론이다.

“정부의 통계 발표를 계기로 한국천주교협의회(가톨릭 교회의 한국총본부 격)에서도 실제 등록신자 호적조사를 면밀히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470만 명이 안 돼요. 그러니까 정부의 조사치보다 48만 명가량 적은 거죠. 등록신자도 아닌 사람들이 ‘나는 가톨릭 신자’라고 응답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배영호 신부는 이런 분석과 함께 계속 말을 보탠다. 그의 분석을 더 들어보자.

“정부 통계에 그런 사람들까지 대거 포함된 결과 실제 우리 등록신자보다 숫자가 부풀려졌다고 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등록신자도 아니면서 그런 대답을 했을까?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심정적으로는 가톨릭에 기울어 있다, 가톨릭에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 질적 특징은 타 종교 신자의 가톨릭 개종 현상이다. 이어지는 배 신부의 분석.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혹은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옮기는 것은 어차피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 한 형제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왔습니다. 마침 이번 정부의 통계를 계기로 그 부분도 따져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당에 신자로 등록할 때 입교 경위를 밝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가톨릭에 들어오게 됐는지, 전에 갖고 있던 종교는 어떤 것인지 소명하는 내용입니다. 이번에 등록신자 수를 세어보면서 그 입교 경위를 더불어 살펴보니 개신교 쪽에서 천주교 쪽으로 옮기는 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에서의 가톨릭 3대 役事

단순히 신자 수가 증가했다는 결과만으로 덮어놓고 ‘가톨릭이 일상과 현실에 지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영혼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고 비약적으로 단언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가톨릭이 한국인의 눈길과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는 표현은 가능할 것이다. 세계 메이저 종교들이 공존하며 경합을 벌이는 한국에서 ‘얌전하고 조용한 줄만 알았던’ 가톨릭이 뜻밖에 다른 종교보다 활발한 확장세를 보이며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어쨌든 이번 정부의 통계조사 결과는 한국의 가톨릭이 (세계교회사와 한국교회사 어느 쪽에서 보든) 획기적인 또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가톨릭 역사에서 한국은 선교사가 들어오지 않고 자체 학습과 선교를 통해 가톨릭의 복음화가 이뤄진,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축복의(가톨릭 입장에서 보면) 땅이라고 이야기 된다. 그것이 첫 번째 역사(役事)로 꼽힌다.

두 번째 역사는 지난해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된 일이다. 1969년 김수환 추기경이 서임된 이후 두 번째다. 가톨릭이 국교도 아니고, 전통의 불교와 개신교의 교세가 훨씬 앞선 나라인데도 추기경이 2명이나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가톨릭 세계에서 갖는 위상과 영향력을 상징한다.

여기에 통계조사 결과도 실제 가톨릭 신자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종교 선택의 자유가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종교 또한 다양한 오늘의 한국인에게, 다른 종교를 제치고 다름 아닌 가톨릭이 ‘영혼의 쉼터’로 받아들여지거나 최소한 그렇게 인식된다는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한 줄로 엮어, 우리는 그것을 ‘한국에서의 가톨릭의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오래전 자기 부패와 타락으로 털썩 쓰러졌던 가톨릭이 이제 시공(時空)을 뛰어넘어 한국 땅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톨릭을 부활하게 하는가? 가톨릭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은 무엇일까? 애초 이 글은 그 질문의 답을 찾아나선 것이었다. 그 답을 찾기에 앞서 먼저 ‘가톨릭의 부활’이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부활인가 생각해 보자.

김영현_월간중앙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