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
(Who You Are When No one's Looking?)
- Bill Hybels(현, 미국 윌로우크릭교회 담임 목사)
1. 인격이란 무엇인가?
人格(Character)이라는 말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거나 신문, 텔레비젼에서도 자주 보거나 들을 수 있는 단어도 아니다. 그러나 인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쉽게 인격이라는 말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주위에서 청소년들이 난잡한 성생활을 하거나, 낙태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며, 성병이 만연하는 것을 보면서 윤리의 종말을 슬퍼하며, 공직자가 뇌물을 받고, 재계 인사가 뒷돈을 요구하고, 투자가들이 내부 정보를 팔아 막대한 부를 챙기는 것을 보면서 정직의 종말을 개탄한다. 매 맞는 아내, 실직한 남편,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남을 돌보고 아껴 주는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묻기도 한다.
인격이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우리가 하는 행동'이라고 어느 현인이 말한 바와 같이 인격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생각하는 바, 평판과는 다르며, 성공이나 성취와도 다르다. 즉 인격이란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2. 위기에 처한 인격적 자질
우리는 굳건한 인격을 갖고 있다는 증거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 나는데 즉, 용기, 자기통제력, 비전, 인내가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1) 용기(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 보통 용기라는 말은 듣게 되는 것은 누군가 아주 영웅적인 행동을 해서 언론 매체의 관심을 끌 때 뿐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 갈수록, 용기는 인생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문제를 맞 닥뜨리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용기는 우리 앞에 슬며시 다가오는 두려움을 직면할 때 자라난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선천적으로 두려움을 모르는 체질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삶의 어느 시점에서 두려움을 피해 달아나지 않고 그것을 직면하는 사람이다. 두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부딪쳐 믿음으로 기꺼이 뚫고 나아가는 사람이다.
<예> 한 여성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이기고 성도들 앞에서 기적과 같이 응답받은 기도에 대해 간증하는 경우
2) 자기통제(즐거움을 유보하고 성공을 달성하는 것) : 자기 통제력은 삶의 모든 영역을 계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는 자기 통제력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결토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통제력을 기를 수 있는 핵심적인 요소는 사전 의사 결정이다. 마음 가는대로 하지 않고, 어떤 일을 행하기로 사전에 결정하면 반드시 실행하는 것이다. 즉각적인 즐거움과 손쉬운 해결책을 좇는 오늘 날, 자기 통제력을 발휘하여 즐거움을 유보하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한다면, 반드시 보상의 날이 올 것이다.
<예> 어떤 남자는 매일 아침, 이전보다 20분 일찍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뛰겠다는 작정을 하고 이를 실행하는 경우
3) 비전(현상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 : 지시받은 대로만 일하는 사람, 현상 유지에 만족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은 사람은 많아도, 비전을 지닌 사람은 많지 않다. 비전을 갖추려면 너무 많은 노력을 솓아야 하고 땀을 많이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비전은 문제 가운데 해결책을 볼 줄 아는 능력, 사람들의 겉모습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내면을 볼 줄 아는 능력,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감지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비전을 갖는다면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창조성과 지혜로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며 삶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예> 어떤 고등학교 교사는 공부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여학생을 포기하지 않고 지도하여 그 학생에게서 타고난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
4) 인내(포기할 순간을 넘기는 것) : 인내는 용기를 유지시켜 준다. 인내는 자기 통제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을 주고, 인내는 비전을 현실화 해준다. 인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은 포기의 순간을 넘기는 것이다.
신이 지금 무엇인가를 포기하려는 시점에 와 있다면, 그것을 내던져 버리기 전에 따르는 댓가를 계산해 보라. 포기하면 인격을 계발할 수 없다. 하나님도 포기하는 것을 축복해 주지 않으며, 포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그것을 뚫고 나간다면, 당신의 내면에는 인내라는 인격적 자질이 든든히 뿌리내릴 것이다.
<예> 한 대학생은 시험과 보고서에 질려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하다가 결국 계속 공부하기로 결심하는 경우
위 네 가지 요소를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인격적 자질'들로 예를 들 수 있다. 이것들은 매력적이지도 않고 쉽게 만들어 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자질 없이 살아 가려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누구나 갖기를 바란다고 생각되는 자질 하나가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 이라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대부분 사랑받고 싶다는 의미로만 사랑이라는 인격적 자질을 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떠받들어 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기를 바라며, 먼저 그들이 우리에게 잘해 주면 우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해주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격을 지닌 사람은 그런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 실제로 사랑의 수고를 행하게 되며, 이런 사람은 다양한 방법으로 또는 종종 자신은 깨닫지 못한 채, 인격의 힘을 드러나게 되는데 크게 엄한 사랑, 온유한 사랑, 희생적인 사랑, 파격적인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엄한 사랑(친밀한 관계에서 진리를 지켜 나가는 것) ; 온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엄한 사랑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사실대로 말하고, 고인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들의 삶이 산산이 부서지기 전에 그들을 꾸짖을 줄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행동이다. 헌신적이로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현재의 편안한 관계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상대방이 잘 되기를 바라며,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가짜 평온을 유지하며 진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진실을 말함으로써 지속적인 평온을 찾는 것이 엄한 사랑이요, 참사랑인 것이다.
<예> 한 여인은 숙취로 출근 못 하는 남편을 위해 그의 상관에게 핑계 대 주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경우
2) 온유한 사랑(남의 처지에서 보는 것) : 거친 사람은 온유한 사랑을 배워야 한다. 온유함은 감정에 젖은 나약함이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향이 결코 아니다. 온유한 사랑은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다.
미워할 만한 사람은 미워하거나 적당히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대하듯 그렇게 사람들을 대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존재인지를 안다면, 평소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도 성령의 힘을 빌어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 어떤 남자는 딸 아이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앉아서 무슨 일인지 말해 보라고 하며 아이를 달래는 경우
3) 희생적인 사랑(끊임없이 주는 것) : 희생적 사랑은 불가피하게 내게서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그것도 대체로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세 가지 필수품인 시간, 기력, 돈이 해당된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셨던 우리 인간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까지 주셨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의 백성을 희생적인 사랑으로 섬길 때, 이 세상이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만족과 성취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희생적인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자를 극도록 소진케 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영적, 육적, 정서적 재충전이 필요하다.
세상이나 교회든 사랑에 덧씌어진 거짓된 화려함을 벗겨 내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희생이 뒤따른다.
<예>어떤 사람은 승진 기회를 포기하고, 가족들이 친구를 사귀며 뿌리내려 온 곳에서 계속 살겠다고 작정하는 경우
4) 파격적인 사랑(적대감의 연쇄 고리를 끊는 것) : 그리스도인의 사랑에 대한 개념은 한 차원 더 나가야 한다. 사랑은 결코 최소한의 일만 해 놓고 의무를 벗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방법은 파격적이며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파격적이고 보복하지 않으며, 십 리를 함께 가 주는 사랑을 요구한다. 한 쪽 뺨을 맞았을 때 다른 쪽 뺨마저 내밀어 주는 파격적인 사랑은, 사람들 사이에 적대감이라는 악순환을 끊어 주고, 영적으로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임재를 깊이 느끼게 하는 길이다.
<예> 젊은 과부가 남편을 치어 죽인 음주 운전자를 용서해 주겠다고 하는 경우 파격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인격적 자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고전 13:13). 그러나 가장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자질이기도 하며, 우리에게 인격적 자질이 없다면 사랑을 배우기에는 몹시 어렵다.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용기,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자기 통제력, 멀리 미래를 내다보며 사람의 마음을 깊이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비전), 조롱이나 마음의 부담, 권태 등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내가 먼저 있어야 한다.
3. 굳건한 인격 기르기
벤쟈민 플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이런 방법을 써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하며, 좋은 자질을 한 가지 익히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가 무섭게 먼저번 자질이 몸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격이란 선의의 결의와 점검표로는 기를 수 없는 것이며, 적잖은 노력과 어는 정도의 고통, 수년에 걸친 성실성이 있어야만 이런 덕성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격적 자질을 기르는 데는 저 마다의 비결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모든 덕성에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신 유일한 분)께서 우리가 그 분을 인격을 우리 안에 두겠다고 제안하신다는 사실이다
4. 값없이 얻은 구원
우리의 인격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절대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얻어 내는 방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인격을 형성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인격이 구원을 받는 방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원은 우리가 대가를 치르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가 때문이다. 용기, 자기 통제력, 비전, 인내, 사랑을 동원한다 해도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선물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생자의 죽음을 값으로 치르시고, 우리는 아무 값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원은 많은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고, 선행이나 진실한 인격을 주고도 얻은 수 없으며, 하나님과 관계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 빈 손 들고 나오는 것 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고 우리가 영원히 그분의 소유임을 확증해 주실 것이며, 그리고 나서(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우리가 그 분을 닮기까지 우리를 다듬고 모양을 만들어 가실 것이다.
인격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굳건한 인격의 소유자가 된다면 전쟁이나 굶주림, 가정 파탄 범죄, 가난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을 새롭게 하시기 전까지 이처럼 완전한 세상에서 살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절망해서는 안되며, 우리의 인격이 굳건히 자라나는 만큼 이 세상은 더 나은 곳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5. 맺는 말 : 그리스도의 인격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삶에 침입해 들어와서 사는 재미를 가져가 버릴까 봐, 자유를 제한하고 갑갑하게 갇혀 살도록 하실까 봐 두려워한다. 예수님은 도둑과 정반대로 훔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주러 오신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세상에서 오해받고 있는 하나님의 가정에 동참할 수 있으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그 자녀에게 정해 주신 역할을 감당해 낼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이있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이 자녀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바라볼 수 있으려면 비전이있어야 한다. 또한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훨씬 쉽지만 형제 자매와 행동을 함께 하려면 인내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가정을 하나로 유지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동참할 것을 권하려면 무엇보다도 사랑이, 온유하고 엄하며 희생적이고 파격적인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새로남교회 김상준 목사님께서 선물주신 책을 요약 정리하다.('0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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