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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꿈꾸는 파사오리 2007. 8. 3. 13:07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한국인들의 리더격인 배형규 목사가 살해당했다는 비보를 듣는 순간, 뇌리를 스친 한마디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이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죽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673명이 죽는다. 그중 17명이 교통사고로 죽고, 179명이 암으로 세상을 뜬다. 산업재해로도 하루 평균 7명이 죽고, 34명이 자살한다. 미국에서는 총기사고(자살·살인 등)로만 하루 평균 81명이 죽는다.

 분쟁지역에서는 어떨까. ‘이라크 보디 카운트(Iraq Body Count)’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이라크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 숫자는 4만여 명에 달한다. 4월 중순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조승희씨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던 날에도 이라크에서는 차량테러로 하루 동안 민간인 200여 명이 숨졌다. 2007년 6월 17일에서 23일까지 한 주간 동안 언론에 보도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수만도 자그마치 763명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7개월 동안 민간인 1700여 명이 사망했다. 한 달에 100명꼴로 죽은 셈이다. 물론 배 목사의 죽음도 숫자상으로는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충격은 그 모든 사망자 숫자를 합한 것보다 더 컸다. 특히 그가 한두 발도 아닌 10발의 총상을 입고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그가 목사라는 신분이 밝혀졌기에 더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정작 배 목사 자신은 그 총알세례마저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삼키고 움켜쥐며 최후를 맞았을지 모른다.

그것도 그 자신의 생일날 척박한 아프가니스탄의 이름 모를 외딴 곳에서 말이다. 더구나 그의 시신이 황량한 사막지대의 도로변에 내던져졌을 장면을 떠올려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 안쓰럽다 못해 몸 안의 혈관이 끓어오름마저 느낀다. 도대체 그는 왜 거기서 그런 죽음을 마주해야 했을가. 그것이 정녕 신의 섭리인가. 내 영혼의 짧은 깊이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족 사람들에겐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독특한 시간관념이 있었다. 누군가가 죽었더라도 그를 기억하는 한 그는 여전히 ‘사사’의 시간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던 사람들마저 모두 죽어 더 이상 기억해 줄 사람이 없게 되면 이때 비로소 그 죽은 이는 영원한 침묵의 시간, 즉 ‘자마니’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기억되는 한 우리는 살아있는 셈이다. 배 목사 역시 우리가 기억하는 한 살아 있다.

 일부 네티즌은 가지 말라고 버젓이 경고판까지 붙여놓은 곳에 구태여 찾아가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자초하고 나라 전체를 곤경에 빠뜨렸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인을 향해서든 그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22명의 젊은이를 향해서든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좀 더 치밀하게 안전을 위해 대비하지 못한 점은 지적될 수 있겠지만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그들을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생각해 보라. 그들의 처지를!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무모하리만큼 순진했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그렇게 겁 없이 아프가니스탄이란 사자굴로 들어간 것 아니겠는가. 종교와 종파를 떠나서, 그 어떤 시시비비에도 우선해서 지금은 대한민국의 젊은이 22명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올 수 있도록 온 국민이 마음의 힘을 합해야 할 때다. 그들의 무사생환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진짜 키는 돈과 협상, 혹은 무력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하나된 간절한 마음일지 모른다. 거듭 그들의 무사생환을 간절히 소망한다. 

정진홍 논설위원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