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평양. 조지 부시 정권 등장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찾은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무릎을 맞댔다. 켈리 차관보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의혹을 추궁했다. 강부상이 받아쳤다. “우리가 고농축우라늄 계획을 갖고 있어서 무엇이 나쁘다는 건가. 우리는 고농축우라늄 계획을 진행할 권리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만들게 돼 있다.” “들었지. 지금 이야기. 틀림없이 인정한 거지.” 켈리 차관보가 곁에 있던 잭 프리처드 한반도 담당특사에게 말을 건넸다. 워싱턴에 돌아온 켈리는 국무부에 방북 결과를 보고했다. 콜린 파월 장관은 “정말 가지고 있다고 말했어”라고 되물었다. 파월의 보고를 받은 부시도 “뭐라고, 인정한 거야”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부상의 발언을 북한의 핵 계획 시인으로 받아들인 미국은 1994년 제네바합의에 따라 지원해왔던 대북 중유 공급을 끊었다. 북한은 이에 맞대응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추방하고 영변의 실험용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2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4년. 북한 핵포기를 위해 5차례의 6자회담이 열렸지만 결국 북한의 핵실험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사태는 더욱 헝클어졌다. 4년간 북한을 비롯한 6개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일본 아사히 신문 칼럼니스트이자 국제문제 대기자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61)가 2002년 이후 시작된 북핵 문제의 전말을 취재해 최근 ‘더 페닌슐러 퀘스천(The Peninsular Question)-한반도 2차 핵위기’란 책을 펴냈다. 11월초 저서의 미국판 출판과 북핵 문제 추가 취재를 위해 워싱턴을 다녀온 그를 최근 아사히 신문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미국 방문때 중간선거가 있었고, 공화당의 부시 정권이 패배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 변화가 예상되는데.
“대화 중시파인 민주당 승리로 변화에 대한 기대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북핵 문제를 풀려면 북·미 양자간 대화가 필수적인데 미국은 대화에 소극적이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올초 방북하려 했으나 미 정부내에서는 직접대화는 안된다며 막았다. 이런 구조는 중간선거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실제로 이번에 워싱턴에서 힐 차관보, 조지프 디트리니 대북협상 대사 등을 만났지만 변화는 읽지 못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 것을 보면 지난 여름 운명적 결단을 한 것 같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는 뜻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 이번 핵실험은 미국에 대한 항변과 함께 중국에 대한 견제 성격도 강하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정말 소원해진 것인가.
“2003년 1월 다이빙궈 외교부 부부장이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핵개발 진의를 캐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결론은 핵개발이 본심이라는 것이었다. 그 이후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런 중국에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 중국과 북한이 뭐가 다르냐’는 식으로 반발했다. 북한은 중국이 미국과 근접해지면서 자신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특히 지난 7월 미사일 발사를 전후해 중국과 북한 군부간의 연락까지 두절될 정도였다. 지난 10월말 탕자쉬안 중국 국무위원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는 양측 모두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할 정도였다는 얘기도 전해듣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중이 협력해 북한의 체제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미·중 관계가 그렇게까지 성숙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12월초나 중순쯤 6자회담이 1년여 만에 재개된다. 회담 전망은 어떻게 보나.
“기본적으로 쉽지 않다. 당장 입구에서부터 충돌할 것이다. 첫번째는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여부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을 들어 핵보유국 위치에서 주장할 것이다. 반면 미국, 중국 등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들어오지 않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되면 사찰 문제도 부딪히게 된다. 미국은 북한에 플루토늄은 물론 HEU 계획 리스트를 내놓고, 사찰을 받으라고 요구하겠지만 북한은 핵시설을 고유의 군사 관련시설이라고 주장, 사찰 자체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칫 본 내용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겉에서 맴돌 수도 있다. 북한은 2년뒤 미국의 정권 교체, 미국은 부시 정권의 레임덕 회피를 위한 성의 보이기 차원에서 끝낼 수 있어 시간벌기 측면이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저서에는 한국은 지나치게 꿈과 희망을 추구해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체제에 일부 균열이 일었다고 지적했다. 햇볕정책의 유효기간이 끝난 것으로 보나.
“한국에 향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민족 공존과 화해 차원에서 햇볕정책의 기본 기조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본다. 방향성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핵문제가 긴급 현안으로 등장한 상황에서 속도 등에 대한 조절은 필요하다. 핵 문제가 방치되면 햇볕정책의 큰 목표가 흔들릴 수 있다. 국제사회가 단합해 메시지를 내야 할 상황에서 한국만이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압력과 대화가 동시에 필요한 상황이다. 압력을 가할 때는 진짜로 가해야 효과가 있다. 미국·일본은 물론이고 중국내에서도 한국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중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6자회담 틀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는 압력을 희망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최종 목표를 향한 전술로 압력과 대화의 완급이 적절히 조절돼야 한다.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을 자주 만났다. 이전장관은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사무라이’다. 미 국방부내에는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는다. 반전장관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설득한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미국내에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 기본적으로 냉엄한 시각을 갖고 있지만 반전장관은 예외다.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같은 이는 반전장관에 대한 신뢰가 매우 깊다. 국무부내에서는 반전장관 이후 한·미관계가 부드럽게 진행될지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정상회담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국제사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분단책에 노(盧)정권이 넘어갔다고 여길 것이다. 한국의 국익에도 마이너스다. 정상회담보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노련한 정치인의 역할이 훨씬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전대통령은 김위원장에게 할 말을 할 수 있는 큰 정치인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일본내에 핵무장론이 확산되고 있다.
“나카가와 쇼이치 자민당 정조회장, 아소 다로 외상 등이 핵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지만 결국 개인의 발언으로 끝났다. 아베 신조 총리는 핵을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 고수에 변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본격적인 핵논의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미·일동맹이다. 북한 핵실험 뒤 일본을 찾은 라이스 장관은 미·일동맹을 재확인했다. 북핵으로 동요하지 말라는 뜻과 ‘이상한’ 말을 하지 말라고 못박는 의미다. 두 번째는 핵에 대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국민감정이다. 두 가지 모두 현재 상황에서 펄펄 살아있다.”
<출처 : 경향신문 2006. 11. 21 29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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