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의 눈물
금년초에 모 TV방송국의 창사 특집으로 제작·방영한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을 감동 깊게 보았습니다. 지구의 허파역할을 하는 열대우림의 아마존밀림지역이 목장개발과 무분별한 벌목과 방화로 인해 황폐화되고, 금 채굴로 강물이 오염되어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여러 원시부족들이 삶의 터전을 점차 잃어 가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해마다 입춘에서 경칩사이에는 단풍나무과의 고로쇠나무가 수난을 겪습니다. 전남 광양에는 해발 1,200m가 넘는 백운산이 있는데, 매년 고로쇠 축제와 섬진강 매화축제가 이어지면서 봄의 시작을 본격 알립니다. 몇 해 전 그곳에 근무하던 이맘때 백운산 계곡 어느 식당에서 동료들과 저녁 후, 고스톱 판을 벌여 북어포와 함께 고로쇠 물을 마시며 밤새 화장실에 들락거렸던 경험을 고백합니다. 고로쇠 물 한 통을 채취하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휘발유 값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으니 주민들에게는 큰 소득원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당시 고로쇠에 대하여 여러 자료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로쇠는 신라 말 풍수학의 대가로 알려진 승려 도선국사에 의하여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절에서 참선을 하고 지내셨는데 하루는 오랜 수행으로 무릎이 펴지지 않아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서다가 나무가지를 부러뜨리고 말았는데 부러진 줄기에서 솟아 나온 수액(樹液)을 마신 뒤, 신기하게도 무릎이 쉽게 펴지게 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水)’가 되었는데, 이 말이 변해서 지금은 ‘고로쇠’나무로 불린다는 것이지요.
믿건 말건, 실제로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각종 미네랄과 마그네슘, 칼슘, 비타민 등 몸에 이로운 성분이 풍부하여 소화와 위장병, 관절계통 질환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설당과 유사한 자당(蔗糖, 사탕수수) 성분이 1ℓ에 16g 가량 포함되어 꿀물처럼 달지 않지만 약간의 단맛이 있음을 먹어 본 사람은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숙취해소와 스포츠 이온음료를 대체하는 생체수(Bio-Water)로 각광받고 있으며, 또한, 고로쇠 물의 화학적 구조가 육각수와 같아 일반 생수보다 생체내로 흡수가 빨라 몸에 이롭다는 것입니다.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이 나오는 원리는 산간지방의 낮과 밤의 기온차가 15°C 이상 되는 일교차 때문입니다. 밤이 되면 땅에서 나뭇잎까지 물을 퍼 올리는 ‘물관’의 부피가 팽창하여 밤새 줄기 속을 물로 채우는데, 낮이 되면 기온이 10°C이상 올라가면 물관에 채워진 물과 공기는 부피가 팽창해 밖으로 나오려는 성질을 갖는데 이것이 고로쇠 수액입니다. 따라서 밤낮의 일교차가 작거나, 낮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거나 비오는 날에는 수액이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무의 수액은 사람에게 있어서 피처럼 생명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백운산을 등산하면서 고로쇠 나무줄기에 파이프가 꽂혀 있거나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달고 ‘피 같은’ 수액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솔직히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 몸에는 이롭다고 하지만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는 수액은 내 몸에서 빠져 나가는 피와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저러다가 나무가 골병들어 말라 죽지는 않을지 걱정도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수십년 된 나무라 할지라도 사후관리가 미숙하거나 마구잡이로 구멍을 뚫어 수액을 채취하면 단번에 나무가 고사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 나무에 구멍 2개 이상을 뚫지 못하도록 마을단위로 감독하는 자정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득과 관광도 좋지만 소홀히 할 경우 수십년간 자라 온 나무들이 어느 순간에 죽게 되면 머잖아 메마른 숲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먹는 수액은 뿌리에서 올라가는 영양분을 가로챈 것이지요. 아무리 큰 나무라 하더라도 한 나무에서 나오는 수액이 고작 7ℓ, 채취기간도 5~6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요즘이 고로쇠 수액채취 시즌인데 주민 소득과 연계되어 여러 지자체들이 고로쇠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이는 몸보신에 유독 즐겨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일지도 모릅니다.
호스가 꽂혀 있는 고로쇠나무와 불타고 있는 아마존 밀림의 모습이 나의 뇌리에 오버랩 되어 환경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상영중인 영화 ‘아바타’도 환경문제를 다룬 것으로 흥미와 함께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무분별한 자연개발과 환경파괴는 결국 지구촌 온난화와 생태계 파괴 등 예측 불가능한 재앙으로 되돌아 와, 그 대가를 우리와 후세들이 몇 배이상으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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