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질'부터 배우는 세관직원들, "청장님 알고 계신가요?"
- [조세일보] 이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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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도 : 2014.08.13 09:40
#. 해외직구로 원피스를 주문한 A씨. 주문한 물건이 언제 올까 기다리기를 수일째. 2주만에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지만 A씨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원피스 앞부분이 칼에 긁힌 자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관 검사 과정에서 옷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된 A씨는 세관에 돈을 물어달라고 항의했다.
해외직구를 하는 '직구族' 또는 수출입기업 직원 혹은 업체 사장이라면 한번쯤은 내 물건을 누가 열어본 것 같은 불쾌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내 물건을 내가 보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서 뜯겨지고 샅샅이 검사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고객은 충분히 항의와 민원 등을 제기할 이유가 충분하다.
배송업체의 잘못으로 운송과정 중에 물건이 파손됐다면 물건 주인은 당연히 배상을 요구할 수 있고 배송업체는 물건값을 물어줘야 한다.
문제는 해외직구가 늘어나면서 세관 직원을 배송업체와 똑같이 생각하는 '직구族'들이 파손된 물건을 세관에 물어내라며 항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배송업체의 경우는 물건이 파손됐을 시 자체 규정에 따라 회사 자체에서 물건을 배상해주지만 세관의 경우 통관검사는 법에 의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이를 배상해 줄 근거도, 예산도 마땅치 않아 세관공무원들만 애를 먹고 있다.

◆…특송화물을 검사하는 인천공항국제우편세관. 해외직구 물건들은 주인을 찾아가기 전, 이곳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먼저 탐지견이 검사를 한 후, 엑스레이 검사대를 거쳐 의심이 가는 물건은 개장검사까지 진행한다. 개장검사는 마약밀수나 신고서와 기재내용이 다르다고 의심이 드는 물건에 대해서만 이뤄진다.
□ "새내기 세관공무원, '칼질'부터 배워요" = 세관에 처음 입사해 통관업무에 배치된 세관공무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일은 '칼질'이다.
세관 공무원이 뜬금없이 웬 칼질부터 배우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다 사연이 있다. 물건을 검사하겠다고 상자를 잘못 뜯었다가는 물건이 파손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통관 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건 파손으로 인한 민원 건수와 배상액 등을 집계하지 않아 정확한 내역은 알 수 없지만 세관공무원들에 따르면 물건값을 물어주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직원은 물건을 검사하던 도중 안에 있던 옷이 찢어져 화주가 불 같이 화를 냈고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같은 과 직원 7명이 십시일반, 옷값을 물어낸 적도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세관공무원들이 최근 들어 더 힘들어진 이유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해외직구 덕분이다. 지난해 해외직구 규모는 1조원을 돌파했으며 올해는 그 두 배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출입 기업들은 통관과정에서의 검사가 왜 필요한지 대부분 이해하지만 해외직구를 하는 개인들은 관세법에 따라 검사를 한다고 이해하기 보다는 물건이 파손됐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항의하는 일이 잦다.
이런 일을 겪은 선임자들은 신입 직원이 세관에 들어오면 무조건 '칼질부터 제대로 하라'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을 시킨다는 전언이다.

◆…개장검사를 하기 위해 상자를 뜯고 있는 모습(좌)과 마약으로 의심이 가는 의약품에 대해 개장검사를 해 약을 직접 살펴보고 있는 모습(우)
□ 지능화 되는 밀수수법, 답답한 세관직원 = 칼질을 잘못해 옷이나 물건이 상하는 경우는 칼질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어찌보면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정작 세관공무원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날이 갈수록 지능화되는 밀수 수법에 세관 직원들이 개장검사(물건을 직접 열어 검사하는 방법)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기로에 서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그룹 2NE1의 멤버 박봄 씨가 마약류 암페타민을 반입하는 과정만 봐도 세관공무원들의 고충을 짐작할 수 있다. 박 씨는 젤리 형태의 다이어트용 과자에 암페타민을 숨겨 들어왔다고 알려졌다.
통관 검사는 대개 수출입 신고기록 등 서류상 의심스런 정황이 포착되거나 엑스레이(X-Ray) 검사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됐을 경우, 개장검사장으로 물건을 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마약류의 경우 개장검사를 하기 전 마약을 감지할 수 있는 기계를 갖다대는데 여기서 이상반응이 나타나면 개장검사를 하게 된다.
세관의 입장에서 개장검사는 최후의 보루인 셈. 과자류의 경우 포장을 뜯으면 상품가치가 하락하거나 먹을 수 없게 되는 등의 물건 파손이나 손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세관에선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검사를 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원재료인 원단의 경우에도 돌돌 말린 천을 풀면 상품가치가 하락하지만 그 안에 녹용 등을 밀수하는 사례도 있어 세관공무원들은 화주의 항의를 감수하고서라도 개장검사를 한다.
이밖에 조명기기, 주류 등 유리로 된 물건이나 조도나 습도에 민감해 은박 포장지에 밀봉된 전자부품(IC 등)을 검사할 때는 물건 파손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마약을 정밀검사할 때는 의류나 신발류의 재봉 또는 접착된 부분을 뜯거나 기기류는 분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위조된 것으로 의심되는 졸업증명서, 자격증, 여권, 신분증 등에 대해서도 세관 공무원들은 증명서의 도장과 홀로그램까지 진짜인지 일일이 확인하는 등 세관공무원들이 통관 검사하는 것 자체가 물건 파손 가능성을 안고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세관이 인천공항세관과 김포공항세관과 함께 해외직구 물품에 대해 특별단속을 하는 과정에서 적발된 차키형 몰카. 외관은 자동차 리모콘이지만 내부에서는 카메라가 숨겨져 있어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큰 불법 제품이다.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물건들과 밀수 수법 등으로 세관 직원들의 개장검사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 "예산 없는 관세청, 내 돈 주고 검사" = 만약 민원에 대한 대응이 확실하고 물건 손상에 대해 배상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되어 있다면 세관공무원들도 지능화 된 밀수 수법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장검사에 임할 수 있다.
하지만 민원발생이 많으면 해당 직원의 인사고과에 어느 정도 영향이 미치는 것은 물론 물건이 파손됐을 경우 배상해 줄 예산도 없어 세관공무원들이 알아서 내야하기 때문에 개장검사를 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돈'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전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관세청은 통관 검사 중 파손 물품 발생시 별도의 보상 체계와 이를 뒷받침해줄 제도적 근거도 없으며 별도의 예산배분 내역도 없다고 답했다.
세관공무원들이 억울해하는 부분도 이 대목이다. 통관 검사는 법에 의해서 하는 일인데도 물건이 파손당했을 시 배상해주는 제도나 예산이 없다는 점이다.
관세법 제1조는 '관세의 부과·징수 및 수출입물품의 통관을 적정하게 하고 관세수입을 확보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제246조 1항은 '세관공무원은 수출·수입 또는 반송하려는 물품에 대하여 검사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관세법을 근거로 통관 과정 중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선 세관공무원이 개인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관세청이 조직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더불어 해외직구를 하는 국민들에게 통관 검사는 법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등 인식개선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화주 입장에선 물건이 파손당하는 물질적인 피해를 입지만 이것도 안전위해물품 등 반입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절차라고 이해를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세업계 관계자는 "수출입기업들도 통관과정 중 물건이 파손되면 민원을 제기하기는 하지만 통관 검사라는 과정 자체에 대해선 어느 정도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며 "하지만 해외직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직원들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할 수 없다. 관세청이 조직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과 더불어 국민들의 인식개선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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