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신변잡기

(수요아침편지62) 맥아더장군과 자녀를 위한 기도

꿈꾸는 파사오리 2010. 10. 6. 08:51

맥아더 장군과 자녀를 위한 기도

 

관세공무원교육원이 1998년말 현재 수원에 있는 국세공무원교육원과 통·폐합되기까지는 인천시 중구 항동의 인천세관 옆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직원들이 교육을 가면 교육원 근처에 있는 자유공원에 가끔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인천항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맥아더장군의 동상이 자유공원의 상징처럼 세워져 있습니다.

관세공무원으로 오래 근무한 직원이라면 이곳에 몇 번쯤은 가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교육 동기생간에 삼삼오오 올라 직장생활에 대한 미래의 꿈을 설계하던 추억이 서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주 9월 28일은 60년전 6.25 한국전쟁 중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26 ~1964.4.5) 유엔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우리 해병대와 함께 수도 서울을 수복한 날이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공산침략으로부터 풍전등화에 처한 전세(戰勢)를 반전시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오늘에 있게 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서울 수복 후 연합군은 계속 북쪽으로 진격하였으나 그해 11월 중공군의 반격으로 후퇴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고 휴전협상이 논의되면서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의 마찰로 이듬해 맥아더는 사령관에서 교체되고, 결국 한국전은 1953년 7월 27일 교체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과 중공군·북한인민군 사령관 등 3자간에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맥아더 장군이 한국전에서 역할과 그 영향에 대하여 배워 왔습니다. 그는 장교출신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한 후 제1, 2차 세계대전시 일본, 필리핀 등 주로 극동지역에서 참전한 오성장군 출신입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라는 그가 남긴 명문구는 총사령관직에서 해임되고, 본의 아닌 두 번째 전역을 하면서 1951년 4월 美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가슴에 맺힌 한을 토로 한 말입니다.

 

그는 참다운 군인으로서 우수한 지능과 보기 드문 통솔력을 갖추었고 의무·명예·조국을 위해 전력을 다한 영웅적인 삶을 살아 왔지만, 한편으로는 결코 순탄한 삶은 아니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인격적인 면에서 맥아더는 불가사의했고 모순적이며, 많은 사람에게 고압적이고 도도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오랜 군 생활에서 늦게 가정을 가졌지만 이혼에 이르고, 57세에 재혼하여 외아들 아서 맥아더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기도문은 그가 아버지로서 자녀들에게 남기고 싶은 따뜻한 부성애(父性愛)를 읽을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문

 

저의 자식을 이러한 인간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자기를 잘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며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 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 설줄 알며

패 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해 주소서!

 

그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는 높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그 위에 유모어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자기 자신을

너무 들어내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그리고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데 있다는 것과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어버이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