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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한 전문직 남성이 자신의 부모형제를 함부로 대하고 낭비벽이 심한 아내와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겠지만, 어느 40대 주부가 10대 아들과 싸우다 눈 하나를 잃는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낳고 키운 아들이라도 용서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내게 “상처”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누군가 한 번쯤 미워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정말 괴롭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상처주거나 상처받을 일 없이 두루두루 원만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딱 한 사람만은 용서가 안 됩니다. 그분은 제가 공무원재직 시 모시던 상사였습니다. 그 상사는 누구라도 자신의 눈 밖에 났다하면 결코 봐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면 그는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심한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그 분께 들은 악담은 아직까지도 제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평소엔 잊고 있다가 불현 듯 그 악담이 되 살아나면 저는 심한 모멸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 정도 보고서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만들겠다.” “당신 고시 몇 회냐? 당신이 그때 고시에 합격한 것을 보면 시험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군?” “너도 남편이라고, 네 마누라가 불쌍하다.”
저는 그와 함께 일하던 기간 내내 들었던 독설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십년이면 산천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세월이 흘러 몇 번의 산천이 변했지만 제 마음에서 그에 대한 악감정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받은 상처를 생각할 때마다 불같이 화가 납니다. 그가 내게 말했던 대로 갚아주려는 마음을 늘 지니고 살았습니다. 내게 상처 준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그리고 종종 그가 내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하지요? 저의 이 분노와 미움을?
공자와 노자, 석가와 예수, 근세의 테레사 수녀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성현들은 한결 같이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저도 용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커녕 미움과 분노만이 고개를 치밀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용서해 보려했습니다. 하지만 또 분개...... 이것을 반복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제가 미워졌습니다.
최근 한 지인에게 저의 이 불편한 심정을 털어 놓았더니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예화(例話)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스탠톤(Stanton)처럼 아브라함 링컨을 모욕한 사람은 일찌기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링컨을 "저급하고 교활한 어릿광대" "고릴라의 원종"이라고 까지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스탠톤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스텐톤을 대했습니다. 후에 링컨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 그의 유해 앞에서 가장 많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 사람이 스탠톤장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링컨대통령의 묘비 앞에서 "여기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누워있다."고 애통해 했습니다.
이 예화를 듣고 제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링컨대통령은 스텐톤이 자신에게 모욕을 퍼부은 것을 그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고 관대히 용서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스탠톤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는 것은 과거라는 커다란 통속에서 쓰레기만 건저 올려내는 꼴이 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독설을 퍼부은 스텐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두 사람의 관계를 승화, 발전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새삼 링컨대통령의 위대함을 절감했습니다. 링컨대통령은 태산 같은 큰마음을 지녔다면, 제 마음은 상사로부터 받은 상처로 바늘조차 꽂을 수 없을 만큼 오그라들었음을 느꼈습니다. 그 날 이후, 자성의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제 저는 링컨 대통령의 예화를 거울삼아 그에 대한 저의 분노와 미움을 내려놓을까 합니다.
용서란 거창한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받은 상처를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분노와 미움을 더 이상 새김질 하지 않으렵니다.
그와의 일은 결코 잊혀지지 않지만, 그러나 잊어야 합니다. 아니 용서를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하되 그 상처는 잊지 말아야겠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저로 하여금 상처받는 이가 없도록 저의 언행을 가다듬는 것 그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20년 동안 묵은 분노와 미움을 말끔히 씻어내고 나니 긴 터널 속에서 걸어 나오는 느낌입니다.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편합니다. 그리고 보니 진정한 용서란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지 못한 내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아닐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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