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9일 그 당시의 한글날은 공휴일이었다.
나의 결혼일은 특별한 날이니 잊어 버릴 수가 없다. 그후 기념일로 격하되어 공휴일에서 제외되더니 올해 한글 560돌을 맞아 다시 국경일로 부활된다고 한다.
시기적으로는 일년중 가장 생활하기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오곡백과가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내가 결혼하던 20년전의 그날도 오늘처럼 무척 화창한 날이었다.
결혼 적령기를 넘어 형수 누님의 소개로 나는 숱하게 맞선을 보던 때였다. 당시 지방(군산)에 근무하던중 곱디 고운 아내를 선을 통하여 만난 후, 이 여자다 싶어 다시는 선을 보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하였다.
서울에서 모 대기업의 직장생활하던 아내를 조금이라도 자주 만나기 위해 나는 일년동안 인천교육원에 무려 3번이나 교육을 갔었다(불필요하였지만 자진하여...)
을지로 3가 지하철역에 벤취에서 기다려 주고 저녁을 먹고, 시내구경, 영화를 보고 나면 데이트 시간이 왜이리 빨리 자나가는지, 나는 마지막 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철에 몸을 싣고 인천 하숙집으로 향해야 했었다.
꿈같은 제주도 신혼여행, 15평의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두 아이를 낳고, 수원, 일산, 대전으로 이사다니며 큰 아이는 초등학교를 세곳을 전학을 다녀야 했다.
못나고 부족한 나를 만나 공무원의 박봉을 쪼개에 못 다한 야간대학과 대학원을 마칠 수 있도록 내조해 주고, 두 아이를 잘 양육해 준 아내에게 더 없는 감사함과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통하여 취미생활을 함께 해주니 나는 더욱 행복감을 느낀다.
우리 집안에서 23년만에 아들을 낳고 일주일 가까이 돌잔치 하던 기쁨, 일산의 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하던 날, 작년말 사무관 승진과 큰 아이의 대학진학, 올 가을에는 교회 순장직분을 주시는 등 우리 가정에 쏟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20년의 결혼 생활이 모두 순탄 한 것만은 아니었다. 종교문제로 명절과 제사때마다 큰집과 갈등, 아내의 복막염 수술, 나의 교통사고 등 이런 시련과 고통을 통하여 나를 연단시키고 더욱 성숙하게 해 주셨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어려울때나 순탄할 때에도 우리 가정을 반듯이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모든 일을 사람이 계획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니 더욱 신실한 주님의 제자도를 지켜 나가야 겠다.
우리 가정이 신앙의 일세대로서 믿음의 본을 보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40중반을 넘어가는 아내의 귓밑머리도 희어지고, 나의 정수리에는 헬기장 처럼 점점 머리숱이 없어 진다.
이번 뜻깊은 결혼 20년을 맞이한 기념으로 아내와 커플링을 맞췄다.
내 손가락에 잘 맞게 반짝이는 황금빛 반지를 보며 앞으로 은혼식, 금혼식, 아니 그 이상의 세월 동안 세상에 함께 하는 동안 아내와 가족을 더욱 사랑하고 지키는 가장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
여보 사랑해!
당신께 장미꽃 20송이를 마음으로 선물합니다.
우리 가정의 선물로 주신 듬직한 세욱이, 최고 이쁜 딸 지원이!
아빠는 너희들을 믿으며 더욱 사랑한단다!!!
2006년 10월 9일 아침
객지에서 결혼 20주년을 맞는 부족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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